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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민일보] 춘천마임축제, 해방과 실험의 8일 마무리… 10만 명 찾았다
2026-09-11

춘천마임축제가 해방과 실험의 8일간의 여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제38회 춘천마임축제가 대표 프로그램인 밤샘난장 ‘도깨비난장’을 끝으로 31일 막을 내렸다. 주최 측 추산 10만 2028명의 관람객이 찾으며 세계 3대 마임축제로서의 저력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 ‘예술난장X’, 미친금요일의 실험 정신을 소환하다

지난 29일 저녁부터 30일 새벽까지 진행된 ‘예술난장X’는 올해 처음 시도된 실험적 난장이다. 미지의 수를 뜻하는 ‘X’처럼 정답 없는 예술적 실험과 감각의 해방을 지향했다. 축제가 대중화·가족화되면서 옅어질 수 있는 해방의 밀도를 회복하고, 예술가에게 표현의 자유와 실패할 권리를 보장했던 ‘미친금요일’의 정신을 현재로 불러오려는 시도다.

‘몸·짓·굿’을 주제로 열린 이번 프로그램은 공연과 설치예술, 참여형 콘텐츠를 결합해 관객이 직접 예술의 일부가 되는 새로운 형태의 난장으로 운영됐다. 초록고래와 오헬렌, 바실리키 파파포스톨루, 록산나 퀴벤, 장성실, 몸꾼 등 국내외 예술가들이 참여해 장르와 형식을 넘나드는 실험적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예술난장의 문은 이두성 춘천마임축제 예술감독의 ‘나비물듦’이 열었다. 초저녁 달빛 아래 펼쳐진 느린 몸짓과 흰 의상의 곡선은 나비의 날갯짓과 승무의 춤사위를 연상시켰다. 공연 말미 관객의 손으로 건네진 흰 나비는 예술난장이 추구하는 ‘물듦’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현장에는 잘 짜인 각본도, 편안한 객석도 없었다. 관객들은 각자 끌리는 무대 앞에 자유롭게 앉아 공연을 바라봤고, 공연자들은 관객의 바로 눈앞에서 몸을 던졌다. 공연자와 눈을 마주칠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관객들은 몸짓의 떨림과 호흡까지 함께 따라갔다.

초록고래의 ‘조형하는 파’는 7명의 무용수가 4시간 동안 파도의 역학을 몸으로 구현한 공연이다. 객석과 무대의 높이가 같은 야외공연장에서 진행된 공연은 공연자들에게 상당한 집중력을 요구했다. 손끝의 미세한 떨림과 바닥에 몸이 닿는 소리까지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됐다. 느리게 몸을 굴리고 다시 일어섰다가 이내 주저앉는 움직임은 파도의 물결 같기도, 끝없이 반복되는 누군가의 분투 같기도 했다.

관객 정지은(40) 씨는 “계속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는 모습이 이상하게 위로가 됐다”며 “파도를 바라보듯 멍하니 공연을 보게 됐다”고 말했다. 일부 관객들은 느린 움직임에 의아함을 드러내거나 공연의 의미를 묻기도 했다. 그러나 쉽게 해석되지 않는 상태 그대로를 마주하게 하는 것 역시 실험의 일부였다.

킬릭모아시의 ‘악몽’은 어린 시절의 기억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공연자는 나뭇가지와 검은 풍선으로 형상화한 불안과 후회의 덩어리를 몸에 매단 채 움직이며 도망칠 수 없는 기억과 마주하는 과정을 그렸다. 발끝과 몸 곳곳에 매달린 형상과 균형을 맞추며 움직이는 모습은 악몽을 떨쳐내기보다 그것과 함께 살아가는 과정을 떠올리게 했다. 기괴하면서도 동화적인 이미지는 깊은 몰입감을 선사했다. 관객 김준형(24) 씨는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을 보는 듯했다”며 “혼자서 무대를 가득 채우는 몰입감이 대단했다”고 말했다.

■ 밤새 이어진 도깨비난장, 몸짓으로 축제장을 채우다

실험적 공연이 펼쳐졌던 공간은 이튿날 두 배 규모로 확장돼 대표 프로그램인 ‘밤샘난장 도깨비난장’의 무대로 탈바꿈했다.

30일 오후 2시부터 31일 새벽 5시까지 이어진 도깨비난장에는 4만 6000여 명의 관객이 몰렸다. 1998년부터 이어져 온 도깨비난장은 한국 전통 대동제를 현대적인 난장 형식으로 풀어낸 춘천마임축제의 대표 프로그램이다. 이번 자리에는 60여 개 예술단체가 참여해 공연과 불 설치미술, 신진예술가 경연 ‘마임프린지’, 시민 참여 프로그램 ‘몸직임’ 등을 선보였다. 특히 시민과 예술가가 함께 어우러진 ‘대동(大同): 광장이 춤춘다’ 프로그램은 관객과 공연자의 경계를 허물며 큰 호응을 얻었다.

축제장 곳곳에서 여러 공연이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졌고, 관객들은 각자 끌리는 몸짓과 소리를 따라 자유롭게 이동했다. 한쪽에서는 음악이 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몸짓 공연이 이어지며 축제장 전체가 하나의 무대처럼 기능했다.

난장 스테이지에서는 마임시티즌의 ‘슈트맨’ 퍼포먼스가 분위기를 달궜고, 이어 놀플러스의 ‘연희경’이 펼쳐졌다. 완연한 밤, 푸른 연기 속에서 상모돌리기와 버나놀이가 이어지며 축제장은 한바탕 굿판 같은 에너지로 달아올랐다.

스트릿 재즈밴드 푸리비다의 공연에서는 관객들이 노래를 함께 따라 부르며 환호했다. 김희진 푸리비다 색소포니스트는 “어디든 무대가 되고 관객이 자유롭게 오가는 것이 도깨비난장의 매력”이라며 “마임축제 관객들은 공연에 대해 항상 열려 있다”고 말했다.

‘몸직임존’에서는 요가와 전통연희, 마임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됐으며, 시민들은 향초가 켜진 공간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 공연을 보거나 푸드트럭 음식을 즐겼다. 아이들은 도깨비 분장을 한 ‘삑삑이’를 따라다니며 웃음을 터뜨렸고, 극단 ‘판토스’는 무대 사이사이의 빈 공간을 풍성한 거리 공연으로 채웠다. 새벽 5시 해가 떠오르는 시간에 맞춰 진행된 이두성 예술감독의 ‘닫는 마임’은 축제의 마지막 순간을 장식하며 깊은 여운을 남겼다.

감자맥주 축제 에디션, 막걸리 ‘난장’, 멀티퍼퓸 ‘숨결’ 등 지역 브랜드 협업 상품도 주목받았다. 근화동396 플리마켓, 춘천문화재단 예술교육, 춘천시립도서관 야외도서관 등 지역 협력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되며 축제의 외연을 넓혔다.

■ 난장의 지속가능성, ‘공간’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

춘천마임축제는 지난 38년 동안 극장을 벗어나 도시 전역을 무대로 삼으며 ‘난장’의 공간을 탐색해왔다. 과거 고슴도치섬은 섬이라는 특수한 공간성 덕분에 완전한 해방구 역할을 하며 많은 이들에게 강렬한 기억을 남겼으나, 개발로 인해 이전이 불가피했다. 현재 활용 중인 레고랜드 주차장에 2024년 둥지를 틀었지만, 축제는 다시 한번 난장의 정체성에 부합하는 공간에 대한 고민과 직면해 있다.

레고랜드 주차장은 접근성과 규모 면에서 강점을 지니지만, 난장이 가진 자연성과 의례적 에너지를 온전히 담아내기에는 정형화된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쇠락한 도시 공간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며 공간을 탐구해 온 춘천마임축제의 다음 발걸음이 기대된다.

이두성 춘천마임축제 예술감독은 “올해 축제는 몸이라는 가장 원초적인 감각을 통해 사람과 사람, 예술과 도시가 연결되는 시간을 만들고자 했다”며 “앞으로도 몸짓과 난장 정신을 바탕으로 시민과 함께 살아 움직이는 축제를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안현 기자 hyunsss@kad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