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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례21] 비옷 입고, 물총 쏘고…흠뻑 젖을수록 흥겹다
2024-06-14

오랜 수렵 생활을 통해 인간의 유전자에 새겨진 공격 본능을 맘껏 드러낼 수 있다. 그럼에도 상대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 심지어 짜릿한 청량감을 선사한다. 물싸움이 가지는 장점이다.

‘물의 도시: 아!수라장’이란 이름의 물축제가 2024년 5월26일 강원 춘천시 중앙로 강원도청 앞 거리에서 열렸다. 비옷과 물총으로 무장한 수천 명의 시민이 6차선 도로를 가득 메운 채 서로에게 물세례를 퍼붓는다. 아들이 엄마를 향해, 엄마는 아빠에게 물줄기를 쏘아대며 쫓고 쫓기는 동안 하늘에선 살수차가 뿜어내는 물보라가 폭포처럼 떨어진다.

도심에서 물을 퍼붓는 이 난장은 춘천마임축제를 여는 개막 행사다. 호수와 강이 많아 ‘호반의 도시’ 또는 ‘물의 도시’라 불리는 춘천에 여름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는 뜻도 있다. 이날부터 6월2일까지 이어진 춘천마임축제는 마이미스트의 극장공연, 야외공연, 시민들과 함께하는 불꽃놀이 등으로 꾸려졌다. 일부 공연자는 물축제에 참여해 시민들과 물싸움을 벌였다.

할머니, 이모부, 고모부, 사촌 동생 등 온 가족이 함께 출동한 정동현(남산초 5년), 동민(남산초 3년) 형제는 축제 참가 소감을 말하는 동안에도 물총 쏘기에 여념이 없다. 동민군은 “물싸움이 이렇게 재미있는 건지 미처 몰랐다”고 말했다. 축제 초반 쭈뼛대던 참가자들은 한두 차례 물총 세례를 받고 나면 스스럼없이 공격에 나선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모르는 이에게도 물싸움을 건다. 방송사 촬영팀에도 물총 공격이 이어지고, 이를 보고 웃음 짓는 필자에게도 물줄기가 날아든다.

축제가 절정에 달하자 거품 발사기가 하늘 가득 거품을 쏘아 올린다. 개구쟁이들이 앞다퉈 거품이 떨어지는 곳으로 몰려든다. 물줄기를 피해 다니던 아빠도 흥에 겨워 이판사판이다. 아이를 목말 태우고 거품 속으로 뛰어든다. 거리 한쪽에선 무작위로 흘러나오는 케이(K)팝 음악에 맞춰 아이돌 칼군무를 추는 ‘랜덤 플레이 댄스’도 벌어졌다. 비옷을 입은 채 춤에 열중한 친구를 향해 짓궂은 물총 세례가 쏟아진다. 이래저래 신나는 난장이다.

물축제는 한여름까지 전국 곳곳에서 이어진다. 7월26일 경북 안동에선 ‘안동 수페스타’란 물축제가 낙동강변에서 열흘 동안 열린다. 서울 광화문에서 정남쪽에 있어 이름 지어진 전남 장흥 정남진에선 7월27일~8월4일 탐진강 일원에서 ‘정남진 장흥 물축제’가 펼쳐진다. 이른 더위에 지친 연인들은 ‘칼로 물 베기’보다 더 무해한 물싸움을 찾아 떠나보시라. 한 번 젖기가 힘들지, 푹 젖는 순간 해방의 기쁨에 빠지게 된다.

[사진·글 이정우 사진가]